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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시 달리는 아이언맨!

#서울국제마라톤(동아)FullSub3

NanEditor
2019.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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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시 달리는 아이언맨!

부상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아이언맨. 이번 서울국제마라톤에서 Sub-3를 달성하며 다시 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돌아온 아이언맨 최영균(@iron_gyun)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는 평어체로 서술됩니다.)

 

 

Q. 이번 대회의 Sub-3 달성은 감회가 새롭다고 들었다. 대회를 마친 소감은?

이번 대회 종료 후 ‘앞으로 다시 시작이다.’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부상 때문에 운동을 제대로 못 했다.  매일 밤 아침에 일어나면 낫길… 기도하면서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심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지내왔다. 운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했었고 이제 운동 그만해야겠다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부상회복을 위한 모든 것들은 정말 다 해보았다. 그런데도 쉽게 낫지 않는 몸에 원망했었고 나 자신에게 실망도 했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대회를 호기록으로 끝내니 정말 눈물이 났다. 피니쉬 라인 400m 전에는 정말 가슴이 벅찼다.

 나에게는 아이언맨 대회를 끝냈을 때보다 훨씬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에…

 

Q. 실제 레이스는 어땠나?

A그룹이었는데 맨 앞에서 뛰지는 않았다 오버페이스를 하게 되면 남은 거리를 완주 못 할 걸 알기에 조금 뒤에서 출발했다. 매번 목표가 비슷한 지인분과 함께 뛰었는데 중간에 낙오되면 그 지인분한테 너무 미안해져서 이번 대회는 같이 뛰진 않았다. 내가 부상이 완벽하게 낫지 않아서 어디까지 이 페이스로 갈 수 있을지 나도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 출발 후 바로 앞에 서브 3 풍선을 단 페이스메이커분이 있으셔서 쫓아갔다 페이스가 조금 느린 것 같았지만 믿고 따라갔다.
3키로 정도까지 페이스를 안정화했고 가다가 텐언더철인클럽 형,누나들이 무리 지어서 가고 있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합류했다. 합류하고 나서 내가 텐언더철인클럽 정재형형,황지호누나,이영재형이랑 같이 하프까지 달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프정도 가다가 재형이형이 이상하게 불편한 것 같아보였는데 몸이 안 좋은 것 같다하셨다. 원래 이런 말을 안한다고 했다. 뒤에 믿고 따르는 사람들한테 미안해져서일까? 여러의미로 감동을 받았다. 텐언더형누나들과 무언의 작별인사를 하고 내 레이스를 위해 섭쓰리목표인 것 같은 사람들을 따라갔다.

이상하게 빠른 건 기분탓이겠거니 하고 나는 30키로까지 같이 갔다 30키로 지나니 다리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거기서부터 마지막 남은 파워젤을 먹고 장갑을 다 벗고 뛰었다. 초반에 장갑이 없었으면 손시려워서 대회집중을 제대로 못했을 날씨였다. 장갑 주신 UTRK팀원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30키로지나서는 섭쓰리목표였던 분들과 또 무언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혼자 독주했다. 32키로쯤 지났을때 10키로만 뛰면 끝이다!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도착해서 쓰러지자!라고 생각했다. 또 가다보니 타이완에서 온 마라토너분이 계셔서 5키로정도 같이 뛰었다.

국제대회 아이언맨 대회에서도 그랬는데 나는 이상하게 외국사람들보다는 잘 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왠지 내가 지면 대한민국이 지는 것 같은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ㅋㅋㅋ 그러면서 짜요짜요하고 타이완 외국 친구들도 뒤로 한 채 종합운동장까지 달렸다.

그때부턴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다리가 천근만근인 상태에서 머리로는 이제 그만뛰자고 신호를 보내는데, 다리는 계속 굴러가고 있고 너무너무 걷고 싶었다 시계를 보았다. 어렴풋이 보이는 252 나는 41키를 뛰면서 시계를 한 번도 안 봤다. 뛰면서 이게 뭔 페이스인지 궁금했는데 참았다. 아니 아예 볼 생각을 안 했다 부상 있고 나서 440 페이스로 뛰어봤는데 정말 힘들었었다. 그래서 410 페이스를 보면 괜히 겁부터 먹는 나 자신이 싫어서 아예 안 봤다.

주 경기장에 들어와서는 마지막 400m를 달리는데 눈물이 났다 6개월 동안 힘들게 지냈던 순간들이 짧은 시간에 스쳐 지나가며 눈물이 흘렀고 뉴발란스 NBx팀 1,2기를 활동하면서 꿈꿔왔던 서브쓰리를 하게되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NBx팀으로 활동하면서 뉴발란스 코치님들이 나에 대한 기대치가 컸는데 매번 부상 때문에 아쉬움만 남겨드렸다. 최재빈코치님이 전광판 기록을 갈아치워 보자고 했는데 작년 기록에 비해 정말 기록을 부숴버렸다. 완주하고 나서 이제 됐다, 되게 잘했다는 말을 하며 대회를 마쳤다.

 

Q. 대회는 어떻게 준비를 했나?

대회 준비라.. 달리기훈련은 아파서 못했고 겨우내 싸이클은 꾸준히 탔다. 아무리 추워도 일주일에 한 번은 장거리훈련을 했다. 보강 운동으로는 친한 친구와 턱걸이 내기를 해서 매일 턱걸이를 했다. 부상 이후엔 마라톤에 필요한 근육들을 조금씩 단련시켜주었던 것 같다.

연습량은 턱없이 부족했고 10월에 21km, 11월에 51km, 12월에 31km, 1월에 19km를 뛰었다. 부상 때문에 LSD 훈련을 따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2월 고구려마라톤 때 대회 겸 LSD 훈련으로 32km를 달렸다. 32km 뛰며 아픈 곳이 조금 둔해지면서 처음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식이요법은 물론 못했다 동네형들과 야식을 먹으며 대회 전날까지 마음껏 먹고 다녔다. 부상이후 자신감을 되찾는게 되게 중요한 것 같다.

 

Q. 달리기는 언제 시작했나?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달리기는 2016년 8월에 시작했다. 제3회 웨어러블런 마라톤대회를 참가하면서부터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엔 대회장올땐 빈손이였지만 집에 갈땐 양손 가득하게 떠나는게 너무 행복했다.ㅋㅋ

 

 

Q. 아이언맨이라고 들었다. 철인이 된 계기나 이유가 있나?

운동을 하는 이유를 말하자면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
애기였을때 너무 밥을 안먹어서 웃으면 뒤로 휙 쓰러지고(머리가 커서 그런게 아니다 라고 한다..) 영양부족으로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어머니가 정말 어렵게 키웠다고 했다. 그렇게 자란 나는 고등학교 입학 후 정말 말썽을 많이 부렸다 그렇게 심한 나쁜짓은 안했지만 부모님 속썩이는 불효자식으론 어딜가도 손가락질 받을만큼 많이 했다.

고등학교 3학년때는 어머니가 학교가서 교감선생님과 내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유리에 비친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도 못본 척 했다. 그 뒤로 살면서 잊혀지지않는 저주에 걸린 것 같이 그 순간이 눈앞에 아른아른한다.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벌을 주는 것 같이..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새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열심히 살았고 내 몸이 정말 소중하다는걸 느끼면서 부모님에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내가 어렸을 땐 아팠지만, 대한민국에서 얼마 안 되는 철인으로 건강함을 증명시켜주고 싶었고 아이언맨이 되어서 어디 가서든지 자랑할 만한 아들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배워본 적도, 해본 적도 없었지만 언젠가 피니쉬 라인에서 노심초사 기다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열심히 훈련했다. 그러면서 나는 철인이 되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8살 어느 7월, 2018 ironman70.3 Jeju 대회에 어머니와 누나를 데리고 대회를 다녀왔다. 누나는 당시 임신 초기였으니 조카 포함 4명이였다ㅋㅋ

나중에 들었는데 대회 날 현재 선수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앱을 옆에 아주머니한테 물어봐서 깔고 나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날 바닷바람이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주셨다. 싸이클을 타면서 내가 느끼는 이 정도 고통은 내가 어머니에게 주었던 아픔보다 덜 하다 생각하며 완주했다.

마지막 피니쉬 라인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어머니가 잘했다고 안아주었는데 그제야 지난날들을 용서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또한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겨졌다.

 

 

Q. 철인을 하면서 위험한 순간이 있었나?

위험한 순간은 싸이클을 타면서 종종 찾아온다. 강원도 쪽에서 트라이애슬론대회가 있었는데 경사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코스였다. 반대편 차선 주로 통제를 하지 않아서 차들이 지나다녔다. 좁은 길에다가 속도도 빨라서 반대편 차선까지 넘어간 적이 있었는데 시속60 에 올라오는 차와 부딪힐뻔했다. 아직도 아찔하다.

아이언맨대회에서도 내리막길이 엄청 긴 코스가 있었는데 지역주민으로 보이는 분이 승합차를 타고 계셨는데 도로 내리막길 도로한복판에서 차를 멈추고 자원봉사자분과 말싸움을 하고 계셨다. 나는 다행히 업힐을 올라가는 순간이라 위험하진 않았는데 다운힐하시는 분들은 아슬아슬하게 피해가셨다. 시민의식이 없는 수준을 떠나 거의 살인자 수준이였다. 대회 측에서 이러한 부분은 잘 해결해주었으면 한다.

 

 

Q. 큰 사고가 날뻔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뚜르드코리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싸이클을 나름 잘 탄다고 생각을 하였기에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 당시 코스가 200km타는 코스였던 것 같은데 파워젤도 없이 빵하나 먹고 초콜렛 몇개 들고 나갔다.

서울 도심을 달려서 정말 신이 났었다 그래서 오버페이스도 했다. 아주 잠깐 10초정도였나? 참가자 중 1등으로 달렸었다ㅋㅋ그 사진을 누가 찍어주었는데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100km타고 에너지가 다 고갈되었던 나는 속도가 점점 떨어지고 몸에 힘이 빠졌다. 뭐라도 먹고 싶었다 근데 주로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보급소는 사치라며 그냥 지나쳤던걸 너무 후회했다.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사막에서 오아시스처럼 내 눈앞에 쑥떡을 팔고 계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현금이 없었는데 아주머니가 너무 배고파 보인다고 쑥떡을 두 개 주셨다. 어릴 때 쑥떡은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몰라서 누가 주면 안 먹고 그랬는데 배가 고프니 정말 꿀떡이였다… 그 뒤로 쑥떡을 보면 힘들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Q.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러너스월드 이대점 사장님이신 텐언더 정민호 형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정밀한 발 분석을 통해 피드백을 들었다. 현재도 많은 러너들의 발을 분석해주고 스포츠에 필요한 물품들이 다양하게 많아서 마라톤 입문자들이 많이 찾으며 개인적으로도 많은 러너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다.

예약은 네이버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 https://booking.naver.com/booking/6/bizes/139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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